의병장 안규홍
1879년 보성읍 우산리 생.
1908년 3월 왜병이 순천에서 보성으로 진군한다는 정보를 듣고 득량면 비둘기고개에 매복하였다가 적군을 전원 사살하는 파청대첩을 일으켰다. 의병을 일으킨 지 3년 만에 더 큰 일을 도모하기 위하여 어머니에게 마지막 작별을 하러 갔다가 왜병에게 체포된 후 1912년 대구 형무소에서 순절하였다.
나철선생 생가
홍암나철 1863년 12월 보성군 벌교읍 칠동리 금곡마을 생.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사퇴하고 1910년 단군신앙을 대종교로 창교하여 만주 간도성 화룡현 등지에서 30만 명의 교도를 확보하고 포교하며 10여 개의 학교를 세워 민족 사상을 가르치고 독립에 힘쓴 선각자이다.
최대성 장군 사당 충절사
정유재란 때 순절한 조선시대의 무신 최대성(崔大晟, 1553~1597)과 그의 아들 최언립(崔彦立), 최후립(崔厚立)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1750년에 안방준(安邦俊) 등 사림들의 상소로 정충사 건립의 윤허를 얻었으나 정충문 사적비만을 순절 적지인 군두에 세웠다가, 이후 득량면 군두에 사당을 건립하여 해마다 부자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경내에는 사당인 충절사와 모의재, 기경관, 정려각, 정충문 등이 설치되어 있다.
서재필 기념공원
1864년(고종 원년) 11월 28일에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 가내마을 생.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켜 왕을 호위하고 신정부를 수립, 개혁정치를 단행하려다가 실패하여 일본으로 망명했다 1894년 갑오경장 때 귀국하여 독립협회를 창립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국문판 <독립 신문>을 창간하고, 독립문을 건립하는 등 독립과 자주근대화를 위해 힘쓴 독립운동가이다.
김구 선생 은거지
1898년 5월경이다. 김두호라는 청년이 보성군 득량면 쇠실 마을에서 45일여를 기거했는데, 이 분이 바로 온 겨레가 민족의 지도자로 숭앙하는 백범 선생이다. 백범은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를 응징코자 일본군장교를 살해하고 옥고를 치르던 중 1898년 3월 7일 인천감옥에서 탈옥한 뒤 이 곳 쇠실 마을을 찾아 든 것이다. 해방 후 상해에서 귀국한 김구 선생은 48년만인 1946년 9월, 백범은 민족의 지도자로 쇠실 마을을 다시 찾았다. 백범은 쇠실 마을을 다시 찾은 소감을 '감격에 넘치었다'고 그의 '백범일지'에 썼다.
취송정
1987년 1월 15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36호로 지정되었다. 순천박씨의 집성촌인 고읍리 마을 안쪽에 있는 별당형 정자 건축물이다. 1988년 기와 보수 공사 때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이 고을에 처음 입향한 박성민(朴聖民)의 5대손 박기진(朴琦鎭)이 1787년에 지었다. 정자 1채와 행랑채로 구분되며, 전체면적은 3,838㎡이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3칸 구조의 기와를 엊은 팔작지붕 누각 건물이다. 막돌 허튼층쌓기의 기단 위에 덤벙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주두(柱頭)와 장혀, 도리(道理)를 결구하였다. 누하주(樓下柱)는 계단 3개 정도의 높이이다. 행랑채는 대문을 중심으로 양쪽에 방 1칸, 곳간 1칸으로 되어 있다. 정자 방 앞쪽에 조그만 연못을 조성했다.
부용산 노래비
박기동 시 안성현 작곡의 '부용산' 노래는 슬픈 곡조의 애닯은 노래이다.

1절(1948년 작시)
부용산 오리 길에 /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 솔밭 사이사이로 / 회오리바람 타고 /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 너는 가고 말았구나 / 피어나지 못한 채 /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 부용산 봉우리에 /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2절 (2001년 작시)
그리움 강이 되어 /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 재를 넘는 석양은 / 저만치 홀로 섰네 /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 너의 꿈은 간데없고 / 돌아서지 못한 채 / 나 외로이 예 서 있으니 / 부용산 저 멀리엔 /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벌교 꼬막시장
상시 열리는 벌교시장에서 짭쪼름한 꼬막을 구입 할 수 있다.
미력옹기
미력옹기 대표이자 전수교육보조자인 이학수씨는 중요무형문화재 96호 옹기장 보유자였던 선친 이옥동 선생님(1994년 작고)의 대를 이어 9대째 옛 모양 옛 방식 그대로 살아 숨쉬는 전통옹기를 만들고 있다. 위치: 전남 보성군 미력면
징광옹기
보성 벌교읍 징광리 금화산 아래 자리한 '징광옹기' 옛 절터였던 이 깊은 골짜기에 옹기막을 세우고 가마에 불을 붙여 그릇을 처음 구운 이는 고(故) 한상훈(1939~1998) 선생이었다. 그이는 《뿌리 깊은 나무》《샘이 깊은 물》을 만들었던 당신의 형님 고 한창기(1936~1997) 선생과 더불어 우리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곳에서 옹기를 굽고 차(茶)를 만드는 등 '우리 것'을 지키고자 했다.
징광녹차
전남 보성군 벌교읍 징광리에 가면 무려 22만평에 이르는 야생차밭인 '징광다원'이 있다. 20여년 전에 재래종 차씨앗을 심어 지금까지 비료나 퇴비를 일절 쓰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대규모 다원으로서는 유일하게 '야생차'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징광다원에서 나는 '징광잎차'는 회원예약제로만 차를 생산해 재고를 남기지 않는 원칙으로 철저하게 품질관리를 하고 있다.
금둔사
•소재지: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 상송마을 뒤
•관리처: 순천시 관광
•연락처: 061)744-8111
해발 679m의 금전산 서쪽에 위치한 금둔사는 신동국여지승람(新東國與地勝覽) 낙안조(樂安條)의 기록과 보물 제946호인 금둔사지석불비상과 제 945호인 금둔사지 삼층석탑으로 보아 금둔사가 있었음을 알수 있다. 1979년 완전 도굴되어 흩어져 있는 삼층석탑을 복원하고 1984년부터 지허 선사가 대웅전과 일주문 선원, 약사전, 요사채, 홍교등을 복원 중창중에 있음.
낙안읍성
순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지방계획도시로 대한민국 3대 읍성 중 하나로 사적 제30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연간 12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주요 관광지로 현재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및 CNN 선정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16위로 선정되었다.
나로우주센터
나로우주센터는 한국최초 우주발사체 '나로호' 발사를 시작으로 21세기 우주기술선진국 진입이란 국가목표달성과 함께 미래우주시대를 개척하기 위한 우주개발의 전초기지이다.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한시적)
2013년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동안 생태계의 보고 순천만 일원에서 펼쳐지는 국제정원박람회는 국제기구의 공인을 받아 다양한 형태의 생태공원이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순천만
가장 자연적인 생태계와 국제적 희귀조류의 월동지로 각광받고 있는 아름다운 순천만의 S자형 수로는 우리나라 사진작가들이 선정한 10대 낙조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2000년 7월에 남해안 관광벨트 개발계획 사업으로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하여 2004년 11월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
순천시립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은 고 한창기 선생이 전 생애를 걸어서 모은 유물 6500여 점이 전시 보존 돼 있다. 고 한창기 선생은 한국 잡지사의 한 획을 그은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을 창간했으며 한글과 전통문화를 온전히 지키고 전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분이다.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은 전시동과 한옥 그리고 야외전시장으로 이뤄져 있고 전시동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한창기실로 이뤄졌다.